노후 대책 없이 팽 당하는 한국의 동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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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능력을 나눠주는 동물친구들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가지 못하는 곳에도 갈 수 있으며, 말없이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동물친구들. 그들은 뛰어난 후각과 청각, 근력과 스피드 등 인간에게는 없는 많은 능력을 자랑하며 이를 인간을 위해 기꺼이 써 줍니다. 때론 용감히 앞장서서, 때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인류의 대소사에 수차례 기여한 조력자이지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돕고 있는 고마운 동물친구들

인간의 신실한 친구 강아지는 세계 1차 대전 중 영국군에서 지뢰를 탐지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돕고 있습니다[1]. 공항에서 폭발물과 마약 등 위험 물질을 감지하고, 거동이 어려운 이들의 눈과 팔, 다리가 되어주는 탐지견과 안내견 약 수십 만 마리가 현재 활동 중이라고 해요. 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지를 추적해 생태계를 보전하고, 흰개미 등 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막아 문화재를 지켜내는 친구들도 있어요.

초능력에 가까운 후각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준다

고양이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쥐의 천적 고양이는 오랜 세월 쥐로 인한 각종 질병과 곡물 피해로부터 인간을 지켜주었어요. 실제로 쥐를 사냥하지 않더라도 고양이의 냄새만으로도 쥐를 쫓는 효과가 있어 오늘날 미국의 디즈니랜드,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영국 외무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관과 단체는 고양이들에게 쥐 퇴치를 맡기고, 중성화 수술과 정기적인 건강 검진, 식대와 숙식을 제공합니다[2]. 화학약품이나 쥐덫보다 더 효과적이고 친환경적인 방역 방법이자 동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길이죠.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에는 약 70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디즈니랜드에 상주하는 고양이 직원들에 대한 안내문
트위터 팔로워도 꽤 많다 (공식 계정)

결정적으로 강아지와 고양이는 사람에 비할 바 없는 사랑스러움과 성실함을 자랑합니다. 신뢰하는 인간에게는 변함 없는 사랑을 주고,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물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건강히,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죠. 그러니 요즘처럼 동물들에게 위문과 홍보를 맡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죠. 병원이나 노인정, 법원에서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곁을 지켜주고, 특정 단체나 기관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 일은 확실히 사람보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더 잘하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동물 주제에 참 ‘팔자 좋다’, ‘출세했다’고 합니다. 동물 입장에서 ‘좋은 팔자’와 ‘출세’의 기준이 과연 인간의 그것과 같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1) 이 친구들은 자신들의 ‘출세’를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고,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맡은 일(이라고 쓰고 인간과 신뢰를 바탕으로 맺은 관계라고 읽어야 할 것)에 매 순간 진심과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먼저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말이죠.




인간을 위해 일한 슬픈 대가

그렇게 온 평생 인간을 위해 일해준 고마운 친구들에게 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평화로운 노후가 약속되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반대의 사례가 더 많습니다.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고 화제가 되었던 마스코트들이 유기, 실종되었거나 부족한 관리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은 주기적으로 들려옵니다.

국민 신문고에 청원[3]이 올라오기도 했던 포천 파출소의 왕방이와 왕순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2018년 5월 포천 파출소장이 데려온 강아지 왕방이와 왕순이에게는 순경 직급의 계급장도 받고 동네 순찰도 나가며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출소에서는 직접 개설한 밴드에 강아지들과 함께 순찰한 사진을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강아지들의 소식을 전했고, 파출소 마당에 마련된 견사는 동네 주민과 어린이, 강아지들이 놀러 오곤 하는 만남의 공간이었어요.

한때 포천파출소의 마스코트였던 왕방이와 왕순이 (사진 출처)

하지만 강아지들을 데려온 파출소장이 타 지역 발령을 받아 포천을 떠나자 남은 직원들은 자신들의 개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마침내 ‘여건상 더 이상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왕방이와 왕순이는 갈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강아지들이 자라서 덩치가 커지자 주변 에서 민원이 들어온다나요? 이를 지켜보고 안타깝게 여긴 포천의 한 시민이 현재 왕방이와 왕순이를 임시보호 중이며, 예상보다 빠른 은퇴를 하게 된 두 강아지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해외 입양을 준비 중[4]이라고 해요.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 명예역장 담비와 부천시 역곡역 명예역장 다행이도 있죠. 1kg가 채 되지 않는 티컵 강아지 밤비는 명예역장으로 ‘재롱 떨어 주기’, ‘지하철 역사 순시’, ‘부정 승객 꾸짖기’ 등의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며 취임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예역장 취임식으로 가던 중 차에서 내리면서 인도에 머리를 부딪힌 충격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5].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작고 작은 강아지 담비 (사진 출처)

쥐덫에 걸려 다리를 잃을 뻔한 고양이 다행이는 어린이를 구하다가 다리를 잃은 역장님에게 입양되어 역으로 오게 되는 되는데요. 닮은꼴 묘연이라며 역시 큰 이슈가 되면서 다행이와 역장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 출간되고 역 곳곳에 다행이의 캐릭터와 다행이 기념 광장이 들어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역장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자 역곡역 측은 다행이를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냈고, 그 후 누구도 다행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고 해요[6].

역곡역 명예역장으로 3년간 활동한 다행이 (사진 출처)
명예역장 다행이를 기념하는 다행광장

부서 이동이나 인사 발령과 무관한 동물 담당자를 명확히 정했더라면? 동물친구를 사무실로 데려오기 전에 충분한 공부와 준비를 해 두었더라면? 그리고 홍보 활동을 마친 후 입양은 어디로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무고한 친구들이 상처를 입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관공서에서 동물의 귀여움을 홍보에 이용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귀엽고 가엾어서,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키워볼까 싶어, 그리고 무엇보다 큰 어려움이나 고민, 제약 없이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에 데려 온 것이죠. 동물을 유기하는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처럼요. 동물친구에게 유니폼을 지어 입히고 복덩이라고 부르며 간식을 주고 예뻐해 주던 순간에는 진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파양와 학대를 저질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한 동물의 노후를 보장하라

우린 종종 ‘팽 당한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놀랍게도 이 표현은 ‘토끼를 잡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삶을 팽(烹)에서 비롯된 표현[7]이라고 해요. 인간을 위해, 그것도 공기관에서 일한 대가로 ‘팽 당하다’는 현실은 끓는 물에 삶지만 않을 뿐 토사구팽 본래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동물들에게 유기란 곧 죽음과 같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촘촘하고 단단한 동물보호 시스템입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관공서에서 동물을 보유할 경우 어떤 환경을 갖춘 뒤 어떤 절차를 거쳐 입양을 진행한다는 규제를 세우고, 이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은퇴한 동물에 대한 처우와 입양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가 있어야겠고요. 경찰서처럼 동물학대와 유기에 대한 단속을 집행하는 곳에서 학대와 유기를 저지른다면 더욱 엄격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지난 7일, 영국 외무성 수석 수렵보좌관 팔머스톤의 은퇴 소식을 알리는 공고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길고양이 출신의 팔머스톤은 지난 4년동안 외무성에 상주하며 각국 외교 사절단 맞이와 쥐 퇴치 업무를 담당해왔어요. 런던에서의 화려하고 숨가쁜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시골에서 제 2의 묘생을 시작한다는 팔머스톤의 소식에 사람들은 ‘고생 많았다’,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매 순간 본업에 충실했던 훌륭한 관료 팔머스톤 (사진 출처)
공직에서 물러난 요즘은 한적한 시골에서 나무를 즐겨 탄다고 (사진 출처)

한국에서도 얼마 전 은퇴한 마약탐지견 친구들의 입양 공고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이슈가 되었죠. 16마리 마약탐지견의 이야기는 많은 호응과 응원을 받았고, 평생 인간을 위해 일해준 친구들에게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냈어요. 입양을 도모하기 위해 친구들 각자의 특성과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꼼꼼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책임감 있는 가족을 찾아준 관세청의 노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각 친구들의 특징과 매력을 담은 입양공고 (출처 관세청)

동물친구들이 꼭 인간을 위해 일해야 한다면, 모든 동물친구들이 제공한 양질의 노동에 걸 맞는 보상과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요?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변함없는 인간의 사랑과 보살핌뿐인데 말이에요.


[1] ↑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웹사이트]. (n.d.). 탐지견의 역사

[2] ↑ 들쥐 퇴치를 위해 길고양이와 상생하는 예시로, 미국의 디즈니랜드,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영국의 외무부가 있다.

[3] ↑ 국민신문고[웹사이트]. (2020.06.29). 포천파출소에사는 왕방이 왕순이를 지켜주세요!

[4] ↑ 두 강아지의 근황은 왕방이 왕순이의 해외 입양을 추진하고 있는 동물권단체 케어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 문화일보[웹사이트]. (2009.10.26). 명예역장 ‘담비’ 황당한 순직

[6] ↑ YTN[웹사이트]. (2017.02.25). 방치된 역곡역 마스코트 '다행이' 행방불명

[7] ↑ '팽 당하다' 라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와 어원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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