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부터 고양이까지, 동물들이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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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 이성과 윤리를 바탕으로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무리의 우두머리를 선출하는 유일한 동물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공직에 출마하여 당선까지 되었던 적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무슨 동물들이 어떻게 출마한 걸까요? 정확히는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동물들을 후보자 자리에 앉혔으며, 그게 어떻게 가능했단 말일까요? 자 그럼, 선거의 달 4월을 맞아 정치에 뛰어든 동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도대체 왜? 어떻게? 그리고 누가?

동물의 선거 출마는 대부분 인간에 의한 정치적 풍자입니다. 기성 후보들에 대한 강경한 반대이자, 대중으로 하여금 최대한 많은 무효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지요. 동물을 상대로 경선을 치르는 것도 모자라 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후보들은 “🐶와 한 판 붙은 아무개”, 심하게는 “🐵만도 못한 아무개”가 되어 버릴 텐데, 물어뜯기에 얼마나 좋겠어요?

물론 이는 동물의 출마가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현행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즉 공직의 후보자가 될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주어지므로[1] 동물은 공직에 출마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와 비슷한 후보자의 조건을 선거법에 명시한 사회라면 동물의 출마란 그저 터무니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 사회의 법 체계는 실로 다양하고, 동물들이 합법적으로 후보로 출마하여 공직을 맡기까지 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답니다.




공직에 출마한 세계의 동물친구들

브라질 시장직에 당선된 염소 이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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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이오이오 (1915 - 1931)

이오이오는 1922년 포르탈레자 시장직에 당선되었던 염소입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이오이오는 인근 해변과 들판, 카페와 음식점에 출몰하며 많은 이들의 예쁨을 받으며 살았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기성 정치권에 불만이 많던 시민들 사이에서 차라리 염소 이오이오를 시장으로 뽑자는 여론이 생기고 선거에 출마한 적도 없는 이오이오는 기명[2]으로 시장직에 당선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실제로 시장으로 취임하지는 않았고요.

1931년 이오이오가 죽자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 이오이오의 시신을 박제하여 도립 박물관에 안착해 두었다고 해요. 이오이오는 정치적 풍자의 상징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많은 동화책과 다큐멘터리, 심지어 삼바 퍼레이드의 소재로까지 다루어지며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오이오의 삶을 그린 동화책 (이미지 출처)
이오이오를 기념하는 카니발 퍼레이드 (이미지 출처)
이오이오를 기념하는 스페셜 맥주 에디션 (이미지 출처)


미국 지역구 대표로 뽑힌 당나귀 보스턴 커티스

만장일치로 당선된 당나귀 보스턴 커티스 (이미지 출처)

보스턴 커티스는 1938년 미국 워싱턴의 밀튼 지역구 공화당 대표로 출마하여 당선된 당나귀입니다. 당나귀를 출마시킨 사람은 바로 민주당 출신의 지역 대표. 반대파인 공화당의 무능력함을 비판하고, 후보가 아닌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비례대표제의 비효율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벌인 일이지요. 많고 많은 동물 중 하필 당나귀인 이유는 당나귀가 민주당의 상징이기 때문.

후보 등록 서류엔 서명 대신 말발굽을 찍어 후보자 등록을 진행했으며, 그렇게 공화당의 첫 동물 후보는 단독 출마한 덕에 만장일치로 당선이 되었다고 해요.

보스턴 커티스의 당선 소식을 담은 기사 (이미지 출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미국 대통령 후보 돼지 피가수스

2분 9초에 등장하는 피가수스

피가수스는 1968년 국제 청년당 (Youth International Party, YIP) 대표로 미국 대통령직에 출마한 돼지입니다. 기성사회의 억압과 관습을 비판하는 YIP의 젊은 당원들은 당시 정치권을 비판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를 공론화하기 위해 피가수스를 출마시켰어요.

하지만 피가수스를 출마시킨 당원들은 풍기문란죄로 체포되었고, 안타깝게도 풀려났을 땐 피가수스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알래스카의 명예시장 고양이 스텁스

스텁스는 1997년 아깽이 시절부터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까지 약 20년간 미국 알래스카주의 탈키트나 명예시장직을 맡은 고양이입니다. 스텁스 역시 기존 후보들에 대한 반대표를 만들기 위해 기명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어요.

고양이 특유의 초연함을 살린 자유방임 정책을 펼쳐 민심을 얻었으며, 주민들은 ‘이보다 더 완벽한 시장은 있을 수 없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답니다. 스텁스는 생전에 와인잔에 캣닢을 띄운 시원한 물을 즐겨 마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세유 시장직에 출마한 강아지 소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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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소시스, 프랑스어로 소시지란 뜻이다

소시스는 2001년 프랑스 마르세유의 시장직에 출마했던 강아지입니다. 유기견이었던 소시스는 소설가 세르쥬 스코토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요, 작품 속 캐릭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문예인과 예술가들의 살롱에도 즐겨 참석했답니다. 시장직에 출마하고는 무려 4.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6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출마 이후에도 소시스는 다수의 TV 프로그램과 북투어 등 행사에 출연하며 2014년까지 스타견으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마르세유에는 소시스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소시스 이름을 붙인 광장과 강아지 공원이 있어요.

마르세유의 강아지들을 위한 소시스 공원 (이미지 출처)
강아지 소시스를 기억한다 (이미지 출처)



동물들도 살기 좋은 세상

자의로 선거에 출마한 인간들이야 물론 당선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 후보들은 과연 단상 위, 카메라 앞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인간들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휘말린 그들이 활동 기간 동안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기를, 그리고 은퇴 후 책임감 있는 누군가가 그들의 노년을 함께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실제로 이렇게 동물들도 한 자리 꿰차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그렇게 동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면 참 좋겠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니 우리가 대신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큰 목소리를 내줘야 하겠지요. 가장 약자인 동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야 말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일 테니까요.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고 존엄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보기 위해선 꼭 투표를 해야겠지요. 누굴 뽑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 차라리 동물을 뽑고 싶더라도 말이에요. 동물 후보들의 이야기가 보여주듯, 투표는 누군가를 뽑기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뽑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1] ↑ 공직선거법 제16조(피선거권)에 따르면 ①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기간으로 본다. ②25세 이상의 국민은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으며, 제17조(연령산정기준)엔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연령은 선거일 현재로 산정한다고 되어있다.

[2] ↑ 기명이란 투표지에는 이름이 없지만 이름을 적어 넣는 방식으로 유권자가 투표할 수 있는 투표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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